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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166]우리동네 싸리나무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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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166]우리동네 싸리나무 담장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7.02.2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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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어느 정도만 무르익어도 현관문을 닫아걸고 살 수가 없다. 여기에서 저기로 어슬렁거리는 바람을 맞고 싶어서이다. 날이 푹푹 찌는 여름밤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그냥 대자로 뻗어 잠이 들어버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문 단속을 이렇게 허투루 한다고 어머니는 난리다. 썩 지키고 싶은 게 별로 없어 그런다고 돼도 않는 말로 말대꾸라도 할라치면 사람 몸 상하는 게 제일 무서운 건데 뭘 모르는 소릴 한다고 지청구를 한참 듣는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가신 날은 문단속을 잘했냐고 몇 번이나 전화를 받게 되니 내 입장에서는 그게 더 무서운 일일 때도 있다.


자기 게 많아지고 분명해지는 세상은 지킬 게 많아지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보통 철저히 지켜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세상이 그래서였을까? 어릴 때 아이들이 도둑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고 무서워하는 걸 보고 도둑을 보게 되면 "어서 오세요. 필요한 건 다 가져가세요." 이렇게 말하면 그만이라고 일러주니 아이들마저 긴가민가 했었다, 내 딴에는 아득바득 지켜내려고 기를 쓰지 않으면 세상 무서울 일이 무엇이겠느냐는 소리를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아이나 나나 사실 그런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니 둘 다 공연한 소리를 주고받았던 셈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에서는 높고 빈틈없는 담벼락을 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무릇 선량한 사람이라면 담벼락에 신경도 써야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래서 나도 곁눈질도 안한다. 아니 실은 아무런 볼 것이 없어서 안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리고만 그 집은 남달랐다. 구청 사거리를 지나 예전 신한은행이 있던 곳 뒤편 골목길로 들어서 조금 내려가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집이었다. 허리춤밖에 오지 않는 담벼락에 온갖 앙증맞은 화분과 장식물들로 작은 정원을 가꾸고 사는 집을 보았을 때, 그 댁에 사시는 분들이 누구신지 한 번 뵙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더랬다.


하지만 이제 그 집은 사라지고 없다. 그 뒤로는 길고 그저 그런 담벼락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이 이어지고 말뿐이다.


그러나 단 한 순간 그런 평범함을 깨는 집이 있다. 극동아파트 옆 구로시장을 막 들어서기 직전의 작은 골목 안이다. 요즘 보기 드물게 빽빽이 들어선 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사는 집이 있기 때문이다. 벌써 몇 십 년을 그 길을 지나쳤건만 언제부터 그렇게 나무 울타리를 하고 살았는지 분명한 기억은 없다. "아. 이 집은 나무 울타리를 하고 있네"하고 화들짝 놀라서 알아본 것도 실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 집을 떠올릴 때마다 '싸리나무 담장' 이런 말이 함께 떠오르지만 그 무성하고 빽빽한 나무가 과연 싸리나무인지 무엇인지 그것을 가늠할 혜안은 없다. 어찌 그런 말이 내 속에서 솟아나왔는지도 의구스러울 정도로 그런 풍경 자체가 내게는 낯설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나무 울타리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날 그 충격이 과히 작지 않았다. '나무로 된 담장을 치고 사는 집이 우리 동네에 있다니!'하고 몇 번이나 그 소리를 되뇌었는지 모른다.


봄 되면 그 울타리에서 싹이 나고 가을이면 낙엽이 지고 겨울의 앙상한 가지들이 서로를 꼭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골목을 지났더랬다. 세월이 얼마나 지난 것인지, 나무들이 이를 데 없이 촘촘히 자라 감히 집안 안쪽에 시선이 가닿는 것을 절대 녹록히 허락하지 않는다.


나쁜 마음을 먹은 이가 이 울타리를 허술하게 보고 몰래 기어들어갈 마음을 낸다면 그 역시도 보기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무들은 제 몸을 분질러가며 그를 찔러대고 아우성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울타리도 톡톡히 제 구실을 잘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는 나무울타리가 쳐있는 집이 있다. 아이들에게 한 번쯤 구경이나 시켜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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