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폭넓고 오랫동안 시범실시되던 제도가 이제는 보편적으로 실시되게 되었다. 주민자치회가 그것이다.
1999년 IMF 경제위기 이후 '작은 정부'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읍·면·동 사무소의 기능축소가 추진됐다. 그렇게 생긴 여유 공간에 문화복지시설인 주민자치센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민자치센터 운영에 참여하는 역할로 주민자치위원회가 구성되기 시작했다.
당초에 설정된 주민자치위원회의 역할은 주민자치센터 운영 참여 정도였지만, 여러 지역에서 그 이상의 활동을 하는 주민자치위원회들이 생겨났다. 지역 축제도 개최하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돌봄을 맡기도 하는 등 주민자치위원회의 활동이 활성화됐다.
그리고 2010년 중앙정부가 행정체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관련 특별법에 주민자치회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위원회보다 역할이 강화된 것이었다. 다만, 주민자치회는 보편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범실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2013년 31개 읍·면·동을 선정해서 시범실시가 시작됐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주민자치회는 점점 더 확산됐다. 그 결과 2024년 연말 기준으로 전국 3,551개 읍ㆍ면ㆍ동 중 1,641개에서 주민자치회가 시범실시되기에 이르렀다. 전체 읍·면·동의 46.1%에서 시범실시를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지역에서 주민자치회로 전환을 했지만 여전히 '시범실시'였던 것은 지방자치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법에 주민자치회에 관한 조항이 들어가지 못하다 보니 시범실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3월 31일 주민자치회를 법제화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월 15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 된 법률안에 따르면,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ㆍ면ㆍ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게 되어 있다.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주민 모두가 주민자치회의 구성원인 것이다. 그리고 주민자치회의 업무는 '주민 화합 및 발전을 위한 사항', 지방자치단체가 위탁하는 사무, 그 외 법령과 조례에서 정하는 사항으로 되어 있다.
법률개정에 맞춰서 행정안전부는 기존의 표준조례를 개정해서 '참고조례'라는 이름으로 곧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각 지역에서는 조례 개정 논의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법률에 나와 있는 내용은 매우 간략하기 때문에, 내실을 채우는 것은 결국 각 지역의 조례와 실천으로 할 수밖에 없다.
우선 주민자치회가 법제화되었기 때문에 주민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지역의 경우에는 기존의 공모+추첨 방식을 유지하더라도,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농촌지역에 맞는 모델이 필요하다.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행정리 단위의 마을이 여전히 마을총회를 하고 있고, 이장을 실질적으로 선출하고 있다. 마을 단위의 대표성이 읍·면 주민자치회 구성에 반영될 수 있게 해야 주민자치회가 명실상부한 지역주민의 대표조직으로 활동하기 용이하다.
그리고 주민자치회는 결국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지역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에도 자치계획을 짤 수 있었지만, 단년도 계획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주민자치회가 주체가 되어 중장기 읍ㆍ면ㆍ동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역 실정에 맞게 교육, 의료, 돌봄. 교통. 문화, 환경, 일자리, 안전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에 예산이 필요하므로, 재원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자체 예산의 일정 부분을 읍·면·동에 할당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읍·면·동 주민자치는 직접민주주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민총회를 개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주민총회에서 중장기 읍·면·동 발전계획을 확정하고 매년 실행상황을 점검해 나가야 한다.
한편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읍·면·동장 주민추천제도 지역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주민자치가 제대로 되려면 읍·면·동장의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전에는 읍·면이 기초지방자치단체였고, 도시의 동지역에서도 동장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했었다. 이런 제도를 단번에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주민자치회 법제화를 계기로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의 길을 열어나갈 필요가 있다.
